이 추경의 짧은 인생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정부는 26.2조를 들고 "빚 없는 추경"이라고 광고했고, 국회는 그걸 받아 30조로 부풀렸다. 늘어난 3.4조의 절반은 지방선거를 한 달 앞둔 의원들이 자기 지역구와 자기 진영의 숙원사업을 쪽지로 끼워 넣은 결과다. 강진 빈집 리모델링 8억, 김포 지하철 용역 7억, 오송 K뷰티 30억, 호르무즈 해협이 닫혀서 추경을 짠다는 정부의 명분과 이 항목들 사이의 거리는 측량이 불가능하다.
가장 슬픈 장면은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자기 당을 향해 "규모가 늘어나면 다시 빚을 내야 한다"고 말리는 그림이다. 청와대조차 자기 당의 증액을 견제해야 하는 상황, 이게 '전쟁 추경'의 진짜 풍경이다. 19일 만에 만든 정부안을 9일 만에 4조 가까이 부풀리는 동안, 정작 호르무즈가 닫혀 경유값으로 신음하는 화물차 기사를 위한 직접 지원은 어디서도 찾기 어렵다.
그리고 야당이 떠든 짐캐리는 결국 정확히 25억 깎였다. 검토보고서가 권고한 22.5억의 111%다. 야당은 "우리가 막아냈다"고 발표할 것이고, 여당은 "야당 의견을 수용했다"고 발표할 것이다. 그동안 진짜 큰 돈, 전세기 110억, 인플루언서 50억, 크루즈 48억은 단 한 푼도 깎이지 않고 통과될 예정이다. 야당은 가장 작은 돈을 가장 크게 떠들었고, 여당은 그 작은 돈만 내주고 큰 돈을 지켰다. 한국 예산 정치의 영구적인 비대칭이 또 한 번 정확하게 작동했다.
한 가지만 더. 전세기는 뭐 전기로 날아다니나, 크루즈선은 풍력으로 가나. 호르무즈가 닫혀서 추경을 짠다는 정부가 같은 추경 안에 가장 많은 연료를 태우는 운송수단 두 가지에 158억을 배정했다. 대형 크루즈선 한 척이 하루에 태우는 중유가 150~250톤이다. 화물차 기사가 경유 한 통 넣을 때마다 한숨 쉬는 동안, 정부는 크루즈 기항지에 마케팅 예산을 신규로 48억 꽂았다. 이게 진짜 풍자다. 짐캐리가 아니라.
결국 이번 추경의 진짜 패자는 화물차 기사도, 택배 노동자도, 농어민도 아니다. 진짜 패자는 "위기"라는 단어 그 자체다. 한 번 명분과 항목이 어긋난 추경이 통과되고 나면, 다음 위기 때 정부가 어떤 단어를 써도 사람들은 절반만 믿는다. "빚 없는 추경"이라는 정부의 첫 약속이 9일 만에 깨진 것을 본 사람들은, 다음에 정부가 "이건 정말 시급합니다"라고 말할 때 무엇을 믿어야 할지 알 수 없게 된다. 그 신뢰의 잔고를 갉아먹는 비용은, 깎인 25억보다 훨씬 비싸다.
칼럼니스트의 시선
범례 ● 핵심: 전쟁·고유가와 직접 관련 ● 논란: 야당·국회 전문위원이 명분 불일치로 지적